< 2FeRed's Conundrum of Life :: [리더십] 변화를 추구하는 슈퍼 리더, 박 준

 

*. 이 글은 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인 정예지양이 현대경제연구소에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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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여인 천하에서 성공한 발칙한 털보

   오늘 스타리더십의 주인공은 1951년 전남 해남에서 7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15세 되던 1965년, 중학교 입시에 낙방한 채 무작정 서울로 향하는 야간열차 안에서 달걀을 까먹으며 목이 메었던 소년이었습니다. 달걀이 퍽퍽해서 목이 메기도 했겠지만 보다 큰 이유는 가난한 집안 살림과 중학교 낙방에 대한 한탄 등 서울로 향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처량했기 때문이지요. 부모님 몰래 달걀을 팔아서 한푼 두푼 모은 단돈 500원으로 상경한 그 소년이 바로 오늘날 한국 최고의 헤어 디자이너로 성공한 박준(본명 박남식)입니다. 

   남자 미용사가 거의 없던 70년대, 굴욕과 수모, 남자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오직 실력으로 최고의 미용사가 된 박준. 전국 최대 규모의 프랜차이즈 박준 뷰티랩을 일구고 미용 제국의 일인자로 군림하기까지의 그의 성공비결과 리더십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본론1.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슈퍼 리더.

   22세 되던 해, 그는 당대 최고였던 'YMCA미용실'에 취직을 합니다. 상경한 후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과 아이스크림 장사, 유흥업소 종업원 등을 전전하는 생활을 했기에 아무런 경력도, 자격증도 없던 박준이 할 수 있는 것은 잡일과 손님들의 샴푸를 해주는 일 뿐이었으나, 그것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남자 미용사가 없던 시절이기에 그를 고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이지요. 남자 '시다'라는 이유로 거부하던 손님들의 반응, 불쌍하게까지 여기던 손님들의 시선, 심지어 그를 호스트 바의 종업원처럼 대하는 손님들의 행동.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실력으로 최고의 미용사가 되는 것뿐이라고 다짐합니다. 손님들에게 모욕을 당한 날일수록 가위를 붙잡고 있는 시간은 길어졌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열 손가락 모두 물집이 생길 정도로 가위를 잡고 또 잡았습니다. 밤에는 미용학원을 다니고, 낮에는 미용실의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 날마다 손이 부르트도록 가위질 연습에 매달립니다. 또한 큰 가방 안에는 항시 가발을 씌운 마네킹과 미용기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과 장소만 허락하면 어디서나 미용 연습을 해댔고 미용 기술을 익히기 위해 친구들과 해남의 6명의 형제들을 늘 자신의 모델로 활용하며 잠자는 시간을 빼곤 미용에 젖어 지내기를 1년. 그렇게 밤낮으로 연습한 결과, 남들은 최소 3-4년 걸린다는 보조역할을 1년 만에 끝내며 미용사 자격증을 땄고, 1980년 국제 미용기술대회에서는 퍼머넌트 부문 3위로 입상하기까지 했습니다. 드디어 '헤어디자이너 박준'으로서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 어떠한 남성도 가지 않았던 길이기에 하루도 평탄치 않은 인고와 끊임없는 노력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박준의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1세는 "승리는 노력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승리는 가장 끈기있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간다. 어떤 고난의 한 가운데 있더라도 '노력'으로 정복해야 한다. 그것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굳이 나폴레옹의 명언이 아니더라도 성실하게 노력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만큼 타인의 주의를 끄는 것은 없습니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오랫동안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성공의 기본입니다.

   슈퍼 리더란 지식과 정보를 주도하며 많은 사람들을 리드하는 리더를 뜻합니다. 그러나,  리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감이나 카리스마에만 의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는 이가 진정한 슈퍼 리더입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의 슈퍼 리더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주체여서는 안 됩니다. 좋은 일을 더 많이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인과응보'의 법칙대로 더 많이 투입할수록 더 많은 것을 거둘 수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슈퍼 리더의 가치 있는 목표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계기를 만들어주고 영감을 줍니다.

     여전히 변화무쌍한 미용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읽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한다는 박준. 그를 통해 노력한 자만이 열매를 거둔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슈퍼 리더를 볼 수 있습니다.

 





   본론2. 차별성을 갖는 변화의 리더

   부엌이나 미용실 등에 남자는 얼씬도 하지 않는 시절, 박준은 용감하게 남자 미용사의 꿈을 갖고 미용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런 얘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남학생들만 있는 곳에 여학생 혼자 지나갈 수는 있어도, 여학생들만 있는 곳에 남학생 혼자 지나갈 수는 없다'는 얘기 말입니다. 겉으로는 강한 척, 있는 척 하지만 남자들이 그만큼 내면으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얘기겠지요.

   박준이 미용일을 시작한 곳은 'YMCA미용실'이라고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도 당시 국내 최고의 'YMCA 미용실'을 보게 됩니다. 스물두 살 되던 해, 다방에 모여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과 신세한탄을 하던 그는 화장실을 찾다가 활짝 열린 문 사이로 'YMCA 미용실'의 풍경을 보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순간, 그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하지 않는 일, 남들은 하지 않는 일, 바로 이것을 하면 성공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 아니, 확신을 가졌습니다.

   1년 후, YMCA미용실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서서히 이름을 알려갈 즈음, 명동의 유명한 미용실에서 그에게 스카웃 제의를 해옵니다. 자신을 키워준 YMCA미용실을 떠나는 것은 곧 배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행의 흐름을 주도하는 명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누르지 못하였고, 결국 그는 스카웃 제의를 수락합니다.

   그러나 명동에서는 아무도 그를 찾아주지 않았는데 이유인즉슨, 헤어 디자이너의 명성과 실력은 늘 찾는 단골손님에 의해서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요즘이야 미용사가 명함을 돌리는 일이 별일 아니지만 그가 처음 미용실에서 일할 때만 해도 없던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명함을 만들었습니다. 세련된 헤어 디자이너로서의 이미지를 위해 본명 박남식을 박준으로 바꾼 것도 이 때라고 하네요. 헤어 디자이너로서 명함을 돌리고 이름까지 개명한 사람은 그가 유일무이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손님을 만들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길거리에 나가 명함돌리기를 하는 적극성을 발휘하고 자신을 알리는데 주저함이 없는, 차별화된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그만의 방식으로 도전하여 성공한 일화는 또 있습니다. 82년 명동에 자신의 매장을 오픈한 박준은 그가 미용업계에 발을 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남들이 안하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고,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알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새로운 소식을 접하기에 총력을 기울이던 중, 우연히 해외 토픽에서 모델을 거꾸로 매달아 머리칼을 자르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박준은 이 뉴스를 보자마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를 해 보리라'는 다짐을 하였고, 결국 <업사이드 다운 컷트>라는 이름으로 성공시키면서 세간의 관심을 얻고, 명성도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 성공에 힘입어 그는 계속적으로 타인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일들에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업사이드 다운 컷트의 성공 이후, 그는 1983년에 남성전용 미용실을 오픈합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것이 통념이었습니다. 그런데 퇴폐 이발소가 늘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고 그 보도를 접하던 와중, 그는 남성전용 미용실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남성전용 미용실은 다시 한 번 성공을 거두었고 미용실의 판도를 뒤집었습니다. 남성도 외모를 가꾼다는 사고 전환으로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이죠.

   21세기는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흐름을 놓치면 낙오하고 뒤처지게 되면서 '변화'는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변화가 화두가 된 시대에 자신의 삶을 꾸준히 새로운 것으로,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리더가 바로 변화 리더입니다. 현재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주의하며 그 흐름을 분석하여 미래를 읽어나가는 안목을 가진, 시대를 앞서는 리더 말입니다.

   남성전용 미용실 성공 이후에도 박준은 누구보다 앞서는 아이디어로 '박준 선풍'을 주도하였고, 그의 '변화 리더'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유행의 흐름이 강남으로 흐르는 것을 간파하여 청담동으로 자리를 옮겨 컴퓨터 시뮬레이터, 어린이 전용 미용실 등의 아이디어를 도입하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미래를 읽는 아이디어로 남보다 한 발 앞섰던 그는 이제는 어엿한 국내 최대 규모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일군 사업가가 되었고 미용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초등학교 학벌로 강단에 서는 대학 강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시작한 일은 김이 빠져서 하기가 싫었다. 일단 떠오른 생각이 괜찮겠다는 판단이 서면 바로 실천에 옮긴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다." 라고 박준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항상 변화하려고 노력하며,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다면 실행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지고 변화하고자 하는 리더.박준은 남자 헤어 디자이너라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맨 앞에 서서 걸은 진정한 변화 리더입니다.

   결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도전하라.

   박준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대로 남이 하지 않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헤어 디자이너 박준의 성공을 향한 발걸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털보 헤어디자이너 박준, 그가 단순한 남자 미용사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게 된 것은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변화에의 의지 때문입니다.

   박준은 이제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저학력은 오히려 자랑거리이자, 그를 보다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과거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함으로써 박준을 '현재의 박준'으로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지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슈퍼 리더 박준의 모습을 통해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man of action(실천가)의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 입니다. 

 

 

 

 

 

 

Reference

 

최정화, 엔젤 아우라

김국현, 20대 부자 만들기

신완선, 파이팅 파브

전미옥, 30대, 반드시 승부를 걸어라(경제수명 2050시대)

나카지마 다카시, 성공을 꿈꾸는 20대를 위한 보물지도

 

http://blog.naver.com/phsoon21?Redirect=Log&logNo=80033771353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12&eid=i7z2qk1UfLzyzvGS1klbhF+mDqg4SBYo&qb=udrB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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