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FeRed's Conundrum of Life :: '2FeRed`s 평생학습/인사조직전략' 카테고리의 글 목록



2007년도에 현대경제연구원에 와이프가 냈던 글인데...
넬슨 만델라를 추모하며... 올립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위대한 용기, 화해의 정신과 사랑에 경의를 표합니다.


*. 이 글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예지 씨가 현대경제연구원에 발표한 글입니다.

**. 모든 저작권은 현대경제연구소 및 정예지 씨에게 있습니다.

***. 무단 전제를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론. 화해와 관용의 실천자, 넬슨 만델라

   영국 의회의 중앙 홀(center hall)에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여러 역사적 인물 가운데 영국 하원의원들이 뽑은 '영웅' 2위와 3위를 차지한 인물은 각각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와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렇다면 1위는 과연 누구일까요? 1위의 주인공은 정작 영국인이 아닌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입니다. 그는 악명 높은 남아공 흑백분리정책의 부당성에 맞서다 27년 간 감옥에서 갇혀 지내야 했지만 '용서와 포용', '화해와 관용' 정책으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흑백 간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나라를 하나로 묶었지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7세기 중반부터 백인의 지배를 받아야 했으며, 빈곤과 질병, 무지 속에서 살아온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에게 자유를 얻게 해준 사람이 바로 넬슨 만델라입니다. 아파르트하이트(흑백분리정책)란 이름 하에 무려 350년 동안 지속된 남아공의 백인통치를 끝내는데 결정적 업적인 남긴 만델라, 그의 리더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1. 보다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비전 리더

   넬슨 만델라는 흑백인종의 평등을 주장하였고, 이러한 주장은 반역죄로 연결되어 무려 27년간을 감옥 안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흑백차별정책을 종식시켰고 흑인 다수사회인 남아공에서 백인통치를 끝내는데 결정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1994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만델라는 단순히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아닌 '아프리카인의 대부'로서 진정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에도, 또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아프리카인들에게 끊임없는 비전을 심어주는 리더였다는 점에 있습니다. 

   만델라는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우리의 어둠이 아니라 빛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봅시다. 현명하고, 재능있고, 전설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는 나는 누구입니까?"라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만델라의 이 연설은 과거 마틴 루터 킹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와 함께 '세상을 바꾼 흑인 운동가의 연설'로 꼽히고 있습니다. 만델라의 연설은 우리가 원하는 '인종차별 없는 세상의 도래'가 이루지 못할 허망한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꿈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지하고 가난한 흑인이 아니라 우리 역시 신의 영역을 표현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함으로써 우리 힘으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입니다.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은 거창하고 허황된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그것이 왜 존재하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흑백인종의 평등)이 왜 존재하지 않느냐고 묻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두렵지만 헤쳐나가고 정복해가는 과정입니다. 이처럼 비전 리더는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꿈꾸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만델라는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으로부터 리비아 방문을 초대받은 만델라는 미국의 간섭에 쐐기를 박고 아프리카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사회에라도 맞설 용기가 있음을 분명히 과시했습니다. 만델라의 이러한 용기는 아프리카인들의 가슴속에 서방 강대국들과도 맞설 수 있다는 비전을 분명히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러면서도 그는 이러한 비전이 현실성을 상실한 몽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만델라는 "300년 이상 지속된 (흑백분리)정책이 10년 만에 모두 해소되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라고 경고하고 "선거를 치른 다음날 벤츠를 몰고 다닐 수 있다거나, 자신의 뒷마당 수영장에서 자유로이 수영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자존심을 스스로 높이고 여러분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 외에는 생활에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라고 얘기하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목표에 대한 성취를 밝혔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비전'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애매모호한 형태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비전이란 단순히 꿈을 꾸거나 허망한 기대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비전이란 새로운 세상과 미래에 대한 열정을 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며, 비전 리더란 구체적인 목표와 성취에 대한 마음속의 지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를 뜻합니다.

   보다 나은 남아공 사회에 대한 꿈과 비전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꿈과 비전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행동과 노력이 없었다면. 넬슨 만델라는 '아프리카인의 대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본론 2. 끊임없이 섬기라, 서번트 리더십

   '남녀구분 없이! 피부색 상관 없이! 빈부 차이 없이! 직책에 상관 없이!'

   수만의 아프리카인들을 가난과 무지로 몰아온 백인의 권력욕의 산물, 아프르트헤이트는 이제 20세기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27년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나오는 날 만델라는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흑인과 백인의 '진정한 화해'를 바라고 있으며 자신은 이 일을 위해 봉사할 뿐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강조하였습니다.

   "친구들, 동지들, 그리고 친애하는 남아프리카여! 평화와 민주주의와 자유의 이름으로 모든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나는 여기 선지자로서가 아니라 국민인 여러분의 겸손한 종으로 앞에 섰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손에 남아 있는 제 여생을 다 맡기고자 합니다."
   만델라의 석방은 한편에서 다수 흑인들의 백인들에 대한 복수의 기회로 여겨질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혹독한 인종차별 정책으로 여태껏 부와 권력을 독차지했던 소수 백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석방된 이후에도, 또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백인들에 대한 일체의 정치보복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흑백화합을 위한 관용과 화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통치철학이기 때문이었지요.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에도 '섬김의 미학'과 '퇴장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내 국민과 조국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의무를 했다고 느끼기에 이만 물러갑니다"라며 대통력직에서 퇴임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나친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국민을 섬기는 종'이 아닌, 국민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지도자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카스트로나 후지모리 등 이러한 지도자들의 말년이 얼마나 불후하고 끔찍했는지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서번트 리더의 기본 소양은 '낮아짐과 비움'입니다. 내가 타인의 봉사자, 종이 되고 하인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타인의 종이 될 수 있으십니까? 끊임없이 섬기고 낮아지며, 나누는 삶을 실천할 수 있으십니까? 서번트 리더십은 힘과 권위, 권력의 메카니즘이 아닌 사랑과 관용의 메카니즘을 사용한 리더십이며, 타인을 위한 봉사에 초점을 두고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리더십입니다.

   만델라 대통령은 탁월한 정치가이자 전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정치가이기 보다는 21명에 이르는 손자·손녀들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디바'(흑인 언어로 시골의 마음 좋은, 친근한 할아버지를 뜻함)로 불리우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권력에 대한 욕구, 남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나와의 싸움을 이기고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봉사하고 베풀며, 동네 아이들, 노인들, 친구들과 시간을 함께 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리더가 바로 진정한 서번트 리더입니다.  

 

   결론. "나는 노력하는 노인일 뿐이다"

   넬슨 만델라는 최근 영국 BBC방송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뽑은, 전 세계 지도자와 사상가 중에서 '세계의 대통령이 되어야 할 사람' 1위에 뽑혔다고 합니다. 또한 대통령 퇴임 후, 각종 협회와 대학에서 만델라에게 상과 학위를 수여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만델라는 이러한 명예가 "남아공 국민들이 자신에게 준 힘"의 결과라는 점을 잊지 않고 있으며 "나는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노력하는 노인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절망의 산에 희망이라는 비전의 터널을 뚫은 넬슨 만델라, 철저히 낮아짐으로써 높아진 인간존중의 태도를 지닌 넬슨 만델라. 우리도 비전과 섬김을 통해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하루하루를 살아야 될 것입니다.

 

 

 

Reference

 

- 넬슨 만델라; 넬슨 만델라, 노장이여 영원하라

- 넬슨 만델라; 나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I Am Prepared to Die)

- 넬슨 만델라; 험난한 자유의 길(No Easy Walk to Freedom)

- 넬슨 만델라(김대중 전 대통령 옮김);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Long Walk to Freedom)

 

- 프리존 뉴스: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상득

-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하는 아프리카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 이한규

- http://blog.naver.com/swpress?Redirect=Log&logNo=50024928776

-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430754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위해 댓글을 남겨주세요. -0-;


 

  
Theme
진성 리더십의 효과성

Comments
진정성 넘치는 리더와 고성과 창출



최근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진정성(authenticity)의 개념이 소위 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성 리더십의 효과성에 대한 논문 및 매경 기사를 소개합니다.
소개된 논문은 첨부파일을 통해 보시면 됩니다!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위해 댓글을 남겨주세요. -0-;


당신이 16세에 아름답다면 그건 당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61세에도 아름답다면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일 것이다.
- 마리 스톱스 -

 

My triggering event 1.
그의 집안은 가난했다. 1952년, 그의 어머니는 그를 출산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몸이 몹시 약한 어머니를 보며 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10여년의 의대 공부를 뒷바라지 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는 결코 없었고 그의 부모는 ‘무지’하였다.

그의 나이 여덟 살, 아이스케키(아이스크림)가 처음 그의 고향에 소개되었다. 어머니는 그의 국민학교 입학 선물을 위해 합천 읍내에서 철제 필통과 아이스크림을 산 후 철제 필통 안에 아이스크림을 고이 담아 읍내에서 한 시간 이상 거리인 집에 돌아오셨다. 집에서 열어본 필통 안에서 아이스크림은 녹아있었고 그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도, 필통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의 나이 열아홉 살,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집에 입주하여 학생을 가르치며, 생활고를 해결하며 그는 고 3 입시 생활을 한다. 저녁 식사 시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입주 과외 집 아들)에겐 고기 반찬이, 자신에겐 허드레 반찬이 차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나이 서른 살, 사회적으로 성공한 그는 서울로 어머님을 모셔온 후,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대형 백화점으로 간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셨던 그의 어머님은 식당을 나와 화장실을 찾다가 시체를 보았다며 혼비백산이다. 어머님은 차가운, 대답 없는 마네킹의 손을 붙들고 “보소, 뒷간은 어딘교?”를 수차례 물었다고 한다.

My triggering event 2.
2007년 9월, 이화여자대학교 조직변화(Organizational Change) 대학원 수업에서 나는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그는 매 수업, 질문을 ‘너무 많이’ 하였다.

아무리 대학원 수업이고, 아무리 세미나 수업이라지만 읽어가야 할 논문의 양은 지금까지에 비해 상당히 많았고, 저녁 6시 30분에 시작하는 3시간 15분짜리 수업을 4시간 넘게 진행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으며, 4시간 수업의 대부분을 나를 포함한 6명의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 진행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누구든지 힘든 만큼 배워가는 것이 매우 많은 수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생들의(나는 결코 아님을 밝힌다) 불만과 고충이 컸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항상 그는 질문을, 그것도 너무 어려운 질문을, 중저음의 목소리로 진지하게 끊임없이 하였다.
“ooo씨는 똑똑한 사람들이 왜 학습을 못 한다고 생각하나요”
“xxx씨는 이 저자들의 변화 관련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씨는 조직 자체가 학습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등등.

그러던 어느 날, 그는 6명의 학생 모두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씨의 미션은 뭔가요?”... ...

친정 아버지와 윤정구 선생님을 통해 배운다, 나에게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triggering event 1의 ‘그’는 나의 친정 아버지이고 ‘그의 어머니’는 나의 친할머니이다.
위의 이야기는 내가 어느 정도 철이 들면서 아빠를 통해 들은 아빠의 과거사다. 이 이야기를 매우 진지하게 하시면서, 아빠는 울음을 참고자 하셨으나 우셨던 기억이 난다.

못 배우고 무지한 부모가 부끄러운 때도 있었단다. 고 3 입시생인데 1년 후배를 가르치며 눈치 보며 밥을 먹고, 점퍼 한 장을 사기 위해 한 달 과외비 모두를 치르며 서러운 때도 있었단다. 마네킹을 보고 사람 시체라 할 정도로 무식하지만 자식을 위해 자신은 먹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필통에 넣어온 어머님을 떠올리며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가난의 서러움을 겪으면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 수 있었다. 엄청난 가난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친정 아버지는 가난한 자, 가지지 못한 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쌍하군’, ‘안됐군’이라는 이성적 사고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진정한 행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실천한다는 점이다. 나보다 못한 자에 대해 ‘나보다 못하다’라고 인식하는 것은 누구나가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를 돕고, 때로는 사사로운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타인을 돕고 위하는 행동은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

친정 아버지는 대기업 퇴직금의 반을 남모르게 기부하는 것은 물론, 올해 역시 남모르게 환갑을 맞아 ‘환갑맞이 기부’를 준비 중이다. 사후 망막 기증 등은 물론 의대생들을 위한 시체기증을 약속하였다. 급기야 ‘부천 희망 재단’의 이사가 되어 사람들을 돕고 계신다. 사람들의 머리(이성)와 가슴(감성) 간 거리가 멀다, 라는 이야기를 아버지는 자주 하신다. 인식, 생각만 하고 행함이 없는 사랑, 신앙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의 어려움과 가난은 이해심이 많고 실천력이 강한, 진정성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며 돕는 현재의 아빠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가난으로 인해 세상을 욕하고 타인을 욕하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가난을 발판삼아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친정 아버지는 과거에도, 지금도 한결같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돕고 계시고 ‘나부터, 내가 먼저’라는 사명을 실천하고 계신다. 이런 아버지를 통해 나는 나보다 가지지 못한 자, 배우지 못한 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헤아림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현실적으로 모색하고 행하는 진정성 있는 실천가의 모습을 배운다.  

triggering event 2의 ‘그’는 다름 아닌 책의 저자 윤정구 선생님이시고 ‘나’는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선생님의 제자이다. 2007년 당시 내 나이 28살. 28년 동안 나에게 ‘미션이 뭐냐’고 물은 사람은 결단코 단 한 명도 없었다, (윗 글의) 친정 아버지 한 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학부 및 석사 과정 시절의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현재의 남편인) 결혼을 약속한 남자도, 절친한 친구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나에게 인생의 목적이나 미션을 물은 사람은 없었다. 그 질문을 받았을 당시, 다소 뜬금없으면서도 선생님 앞이라고 다들 뭔가 거창한 미션을 생각 해내려했던 나와 학생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내가 민감하게 반응을 한 것일 수도 있으나 이 질문은 나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내가 내 인생을 살면서 내 삶의 목적을 모르고 있었다니...’ 참으로 헛헛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 그리고 ‘왜 많은 사람들은 혈액형이나 연예인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내면과 삶의 목적, 의미성을 살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워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부터 목적성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진정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만약 선생님이 ‘진정한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너의 미션이 무엇이냐’는 이 질문은 나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의 홈페이지에는 선생님의 미션과 비전, 가치가 정리되어 있고, 중요한 점은 선생님이 정리해 놓으신 ‘학자로서 세상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선생님의 미션과 내가 대략 5년간 뵈어온 선생님의 언행에 불일치하는 점이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 시대의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시고,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신다. 이젠 좀 쉬셔도 될 듯 한데.. 학문과 연구를 위한 선생님의 열정은 가히 폭발적이고 때로는 너무 치열해서 그런 선생님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공부가 되는 때가 있다.

아는 분들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이 책의 수익금 전액은 선생님께서 평소에도 돕고 계시던 단체 및 몇몇 기관으로 기부된다. 스터디 그룹을 진행하는 멤버들에게는 시간 날 때마다 ‘진정한 학자의 길’에 대해 나지막하지만 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교사는 많으나 스승은 없는 이 시대에 진정한 ‘스승’으로서의 면모를 말씀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시는 분이며 이러한 선생님을 통해 진정한 학자로서의 모습을 마음에 새긴다.

삶의 원칙과 가치가 확고한 사람들, 그리고 주제 넘는 마지막 부탁.
친정 아버지와 윤정구 선생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진정성이란 일차적으로는 머리와 가슴이 일치하는 삶, 스스로가 제시하는 미션 및 비전과 일치하는 생활을 하고자 노력하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운 진정성 있는 삶이란 본인의 이익을 넘어 경제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가지지 못한 자들 역시 진정성 있게 대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에게는 어찌 보면 너무나 혹독한 잣대와 원칙을 들이대고, 이를 바탕으로 설정된 미션과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타인에게는 끊임없이 베풀고, 관대하며, 더 주고 더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단순히 나만, 내 가족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판치는 지금 이 시대에 타인을 대하는 두 분의 태도와 행동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다.

21세기의 트렌드가 진정성이라는 말을 이 책에서도, 뉴스에서도 많이들 한다. 윤정구 선생님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실, 거슬린다. 진정성이란 트렌드가 아니라 모든 순간순간, ‘소크라테스’, 아니 그 이전 시절부터 모든 사람과 조직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가 아닌가!

독자들이 이 책을 처세술이나 ‘트렌드를 읽기 위한 트렌드’로 대할까 걱정된다. 대세가 진정성이라니 책을 읽긴 하지만 진북, 진성, 영혼, 정신모형 2... ... 마치 살신성인이나 성인군자 이야기하는 듯 하여 괴로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 충분히 든다.

처음엔 어렵다, 인정한다. 꼭 나를 찝어 비판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다들 대충대충 잘만 사는데 왜 꼭 진북을 찾아야 하는건지 이해가 안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을 습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찾기 위한, 영혼의 먼지를 닦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이 책과 선생님의 가르침을 사랑하는 제자로서, 독자들이 설렁설렁 책장만 넘기지 않으시길 간곡히 바란다. 우리 모두가 진정성있는 ‘플랫폼’으로서의 삶을 살기를, 61세에도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물론 나.부.터.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위해 댓글을 남겨주세요. -0-;


  
Theme
삶겨 죽은 개구리 신드롬(boiled frog syndrome)


와이프가 쓴 글인데...강의 자료로 쓰는 자료라고 합니다.


What about 'me'?: Boiled Frog Syndrome

 

프랑스는 말, 거위 간, 원숭이 뇌, 달팽이 등 아주 독특한 재료들을 요리로 승화시키는 국가이다.
여러 재료 중에서도 아주 유명하고 독특한 프랑스 요리가 있다.
삶은 개구리 요리
(Grenuille)인데, 손님이 앉아있는 식탁 위에서 버너와 냄비를 놓고 개구리를 산채로 냄비에 넣고 조리하는,
즉 서서히 익히는 우리나라의 전골이나 탕과 같은 요리이다.

그런데 이 때 주의할 점!
처음부터 너무 뜨거운 물에다가 개구리를 넣으면 튀어나오기 때문에
처음에는 개구리가 좋아하는 온도의 물속에 개구리를 넣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
그러면 개구리는 따뜻한 물에 기분이 좋아 가만히 있게 되고 이 때부터 서서히 뎁혀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느린 속도로 아주 천천히 가열하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식사 시간에 개의치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가
빨리빨리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런 요리가 인기를 끌래야 끌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개구리는 따끈한 물에 기분좋게 가만히 앉아있게 되고, 자신이 삶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기분 좋게 삶겨죽는 것이다.

미국의 코넬 대학에서 개구리 실험을 했다.
찬물이 들어 있는 비커 안에 개구리 한 마리를 넣고 비커 밑에 알코올 램프에 불을 붙여 서서히 가열하면서
개구리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
처음에 찬물 속으로 들어간 개구리는 주변을 살피더니 헤엄을 치며 놀기 시작했다
.
심지어 개구리는 점점 따뜻해지는 수온을 오히려 즐기고 있는 표정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개구리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갑자기 몸의 동작이 빨라지더니 비커를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개구리가 빠져 나오기에는 비커 안의 물이 너무 뜨거워져 있었고 결국 개구리는 그 안에서 삶아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소위 삶아진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 이다.
 
마찬가지로, 변화라고 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규모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변화는 거의 모두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매우 서서히 다가온다
.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커 안의 개구리처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변화가 도래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그러한 상황에서 변화는 이미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그리고 보이지 않는 변화의 실체를 미리 감지 못한 사람은 안타깝게도 삶아진 개구리의 신세가 되기 쉽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당장 먹고사는 걱정은 없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대단하다는 말도 가끔은 듣고 있으니깐 등등
이만하면 되겠지라는 적당주의와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그렇게 하루 하루를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마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변화하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편안하게 죽어가는 개구리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은 비단 화산폭발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 때문이 아니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전이 사라짐으로써 서로 단결하지 못하고
목적과 목표의식이 사라져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진 것이다
.
이러한 변화무지 증후군, 혹은 비전상실 증후군은 우리를 개구리처럼 삶아내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

무라야마 노보루, 피카소와 삶은 개구리
KBS 스페셜 - 캐비닛 속의 도시이야기 개구리 냄비 요리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위해 댓글을 남겨주세요. -0-;


  
Theme
100년 기업의 변화경영


Comments
이글은 이화여대 정예지 박사과정의 글이며 저작권은 남편에게 있습니다. -0-;



100년 기업의 변화경영을 읽고


           프랑스에는 Grenouille라는 개구리 요리가 있다. 손님이 직접 보는 앞에서 개구리를 산채로 냄비에 넣어 조리를 하는 것인데 조리 과정은 다음과 같다. 냄비에 개구리를 집어 넣는데 이 때 냄비 속 물의 온도는 개구리가 편하게 느끼는 27도 정도이다. 27도의 물을 아주 느린 속도로 데우기 시작하고 결국 어느 순간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신경이 마비되고 완전히 삶아져서 야채, 양념소스와 함께 식탁 위 접시로 옮겨진다, 당연히 죽은 채로 말이다. 이 때 중요한 점! 처음부터 개구리를 너무 뜨거운 물에 넣으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 오르기 때문에 처음 냄비 속 물의 온도는 ‘개구리가 가장 선호하는 온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의 이야기는 변화 무지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boiled frog syndrome’의 사례를 보여준다. 지금 이 정도면 괜찮겠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기겠어 등등의 안일한 생각으로 우리는 우리의 신경이 마비되는 것을 모르는 채,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변화하기를 두려워하고 있기에 냄비 속 개구리마냥 slow death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경영 환경에서의 뜨거운 감자는 무엇보다도 ‘변화’이다. 더군다나 현대의 기업들이 당면하고 있는 변화는 냄비 속 개구리가 당면했던 서서히 일어나는 (온도) 변화가 아니라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식의 변화이다. [100년 기업의 변화경영]은 이러한 매우 극심하고 비선형적인 변화를 이겨내고 100년 기업을 이끌어 온 변화 챔피언들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를 제시해준다. 또한 기업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변화 경영 3 단계를 통해 우리 개개인이 change agent가 되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변화, 혹은 변화경영이라는 말은 21세기의 화두가 되면서 이제는 너무나 흔해빠진 단어가 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변화와 관련된 책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너무 어렵게 이론적 차원에서 설명을 하거나, 피상적으로 변화에 성공한 사례들을 나열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직접적이고 비교적 쉬운 solution을 주는 책은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00년 기업의 변화경영]은 굳이 경영학자, 경영학 전공자가 아니어도 비교적 쉽게 그 내용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은이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이 돋보이며 지은이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신 레빈 이론’을 통해 특정 행동이 뿌리는 내리고 있는 멘탈 모형의 변화의 중요성을 통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각 장의 초입마다 헬렌켈러, 생텍쥐페리, 소로우 등 소위 ‘위인’들이 언급했던 변화와 관련된 짤막한 명언을 싣고 있다. 짧지만 impact있는 이러한 명언들은 총 17장의 챕터를 읽기 시작할 때 변화에 대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변화해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끔 해 준다. 또한 각 장 끝의 change insight 부분 역시 초입의 격언들과 마찬가지로 한 장의 독서 여행을 마친 이후, 어찌 보면 이론적인 내용들로 인해 긴장감이 느슨해지고 이러한 이론적 부분과 현실 생활에서의 매치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 일상다반사적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시와 영화 등에서의 사례를 통해 변화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다져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파트는 무엇보다도 ‘신 레빈 이론’일 것이다. 해빙, 변화 굳히기의 3 단계를 행동이 아닌, 행동의 기저에 깔려있는 ‘멘탈 모형’에 접목시킨 창의적 전개가 무엇보다도 흥미진진하다. 각각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방안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변화를 굳혀 급진적인 거북이가 되기 위해서 세워야 하는 조직과 나의 미션, 비전, 가치(관)의 제시는 매우 구체적이다. 또한 개인 수준에서의 멘탈 모형 변화를 넘어서서 조직의 동적 역량 관리를 위한 문화 관리, HR 시스템의 구축 등에 대한 매우 실천 가능하고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경영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 모두는 naïve scientist이며 나, 내가 속한 조직, 그리고 세상에 대한 big assumption을 가지고 있다. 이 가정이 틀린 경우 이 ‘틀림’의 정체를 알아채고 제거하여 deep change를 이루어내는 것, 즉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역설적으로 다시 한 번 ‘나는 변화할 수 있다’는 나의 멘탈 모형의 변화에 달려있다. 마의 1마일 4분 벽을 깬 로저 배니스터와 같이, ‘stay hungry, stay foolish’를 몸소 실천하여 현재는 변화와 혁신의 상징이 되어버린 스티브 잡스와 같이 나 스스로의 변화를 경영하는 계기를 이 책을 통해 모든 이들이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위해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이 글은 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인 정예지양이 현대경제연구소에 발표한 글입니다.

**. 모든 저작권은 현대경제연구소및 정예지양에게 있습니다.

***. 무단 전제를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론: '아름다운' 청년, 대니 서

   2006년, 가수 '비'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어 한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였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하지만 이보다 훨씬 앞선 1998년, 이미 피플(People)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되었던 재미 한국인 청년에 대해서는 혹시 알고 계시나요? 이 아름다운 청년은 1996년에는 미 출판업계 선정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로, 워싱턴포스트지에 의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근사한 청년'으로 극찬을 받은, 대단한 수상 경력의 청년입니다.

   이 청년은 바로 고래 남획 금지, 모피 불매 운동 등으로 유명한 환경 운동가이자 그린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대니 서(한국명 서지윤)입니다. 대니 서가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그리도 콧대 높은 사람들이 그를 아름다운 인물로 뽑았을까요? 작은 거인 대니 서의 셀프 리더십과 원칙중심 리더십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1: '하루 15분' 철학의 원칙중심의 리더

   1989년, 대니 서의 12번째 생일(4월21일)하루 전 날, 그는 'Earth 2000'이라는 환경 단체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날 밤 우연히 방송 토크쇼를 보던 중, 동물의 권리(돼지나 소나 사람이나 육체적인 고통을 똑같이 느낌)를 역설하는 한 여성 토론자의 꿋꿋한 모습에서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대니 서는 동물 역시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동년배들에게 알리기 위해 조직을 만들기로 작정했고 그 조직이 바로 'Earth 2000'입니다.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10달러를 가지고 7명의 친구들과 함께 설립한 이 단체는 놀랍게도 곧 20,000명의 회원으로 번져갔습니다.

   12살이라는 어린 나이, 푼돈 10달러로 시작한 단체가 회원 20,000명의 큰 단체로 발전하고, 1년에 40회 정도 강연을 하면서 큰 금액을 여러 단체에 기부하게 된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대니 서의 '하루 15분'의 철학으로 뽑히고 있습니다. 대니 서는 항상 작은 기적의 중요함을 내세우면서 환경 운동을 펼쳐나가는데, 그 작은 기적이란 보통 사람이 하루에 15분만 투자하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주의입니다. 마일리지 기증하기, 농구화와 금속제품 재활용하기, 물건을 살 때 천연재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수돗물 아껴 쓰기 등 아주 사소한 하루 15분의 노력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진다고 대니 서는 주장합니다.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것들. 대니 서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언제나 같은 원칙'을 행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었으며, 이러한 모습은 바로 원칙중심 리더의 본질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칙중심의 리더는 말로서 승부를 거는 사람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소신과 그 소신을 행하는 모습으로 세상의 반칙들을 상대하는 리더입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겨우 15분으로 어떻게 지구를 바꿀 수 있냐'고 비아냥거리겠지만 쓰레기 줍는 데 1분, 분리수거하는데 5분 등 너무나 뻔한 원칙들을 실천해 나가고, 너무나 기본적이어서 우스워 보이는 원칙들을 고수하고 솔선수범하는 것을 통해 그는 원칙을 지키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원칙을 실천하는 책임감과 자신감, 그리고 확신의 원칙. 이러한 원칙과 일관성이 대니 서를 아름다운 청년이자 원칙중심의 리더로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일 것입니다.





   본론 2: 셀프 리더십, 자신을 리드하기.

   앞서 언급한 'Earth 2000'이란 환경단체는 만들어진 지 9년 만에 회원 2만5000명 규모로 컸지만, 그는 "단체가 특정인 카리스마에 의존해선 안 된다"며 자진 해산, 다시 한 번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떠한 동물 음식도 먹지 않기, 개구리 해부 반대, 고래 포획 금지 등 일반인들과는 괴리된 채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되기 십상인 환경운동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니 서는 간결하고도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거창한 활동을 하고 단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12살 동심이 지닐 수 있었던 '내가 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소박 하지만 귀중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몇 년 전, 국내 한 기업의 CF를 촬영하기 위해 한국에 온 대니 서는 '운동가'만이 참여하는 환경운동이 아닌 '모두'가 참여하는 환경운동이 되어야 함을 인터뷰를 통해 강조하였으며, 이 믿음 위에 대니 서는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라(Be the Difference)'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스스로 변화를 만들고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 대니 서는 '항상' 번 돈의 20%를 반드시 공익단체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차도 없이 살고 있으며 무자비한 도축이 싫어 고기는 전혀 먹지 않습니다. 가구도 대부분 길에서 주워 고친 '중고 쓰레기'들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생활을 통해 감성(EQ)과 독립심을 키울 수 있어 행복하다면서 "남을 위해 내가 먼저 돈을 쓰고, 내가 먼저 행동하면 좋은 결과로 돌아와요. 흐르는 물에 주먹을 들이밀면 물이 튀지만, 두 손을 벌리면 물이 고이는 것과 같죠."라고 이야기 합니다.

   수 만, 수 십 만의 세계인들이 그의 저서는 물론 그의 언행일치에 영감을 받고 환경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니 서의 '비움을 통해 채우는' 자발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셀프리더십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셀프 리더십은 비교적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리더십의 개념으로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속적인 과정'으로서 외부의 영향이 아니라 스스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셀프 리더십의 핵심은 내가 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 즉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 먼저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나 자신'이며, 행복한 인생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가는 결국 나이 몫이라는 것입니다.

   굳이 환경운동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리드(lead)할 수 있을 때라야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도 얻고 능력도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독수리 5형제'도 아니면서 지구와 환경을 구하겠다는, 어찌 보면 너무나 거창하고 막막한 운동이지만, 그의 저서 제목과 같이 스스로 변화를 만들겠다는 원칙 하에 대니 서는 스스로를 리드하며 자기 자신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타인에게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합니다.

   결론: 나부터 '변화의 주체'가 되자

   내가 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 세계평화와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작지만 결국은 '나 자신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과 '하루 단 15분'의 티끌이 수백, 수천 시간의 태산이 된다면 언젠가는 세상도 바뀔 것이라는 믿음. 진실은 항상 가깝게 있고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켜나가기 힘들기에 우리는 의도적으로 진실과 원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루 15분으로 도대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냉소와 불신을 '할 수 있다'라는 행동으로 보여준 작지만 아름다운 대니 서의 리더십.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 '나부터'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나를 리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면 우리 모두도 충분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뽑힐 수 있다고 믿습니다, Let's be the difference!

      

Reference

 

대니 서, 「행동하는 세대」

대니 서,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대니 서, 「아름다운 청년, 대니 서의 집」

조선일보 [Zoom-in] 재미 한국인2세 환경운동가 대니 서 (2001.05.19)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위해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이 글은 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인 정예지양이 현대경제연구소에 발표한 글입니다.

**. 모든 저작권은 현대경제연구소및 정예지양에게 있습니다.

***. 무단 전제를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론. 인간승리의 대명사, 랜스 암스트롱

   랜스 암스트롱은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를 7연패 한 사이클의 진정한 황제입니다. 투르 드 프랑스는 프랑스 전역을 일주하는 사이클 대회로 매년 7월에 열리며, 유럽에서는 월드컵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해발고도 2,000m 가 넘는 프랑스 곳곳의 산악 구간을 포함해 험난한 코스가 많기로 유명해 일명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기도 하지요. 랜스 암스트롱은 이 죽음의 레이스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우승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경기에서 우승을 연달아 하였기에 '인간승리의 대명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암스트롱은 1996년, 고환암 3기 진단을 받았고 생존확률 3%라는 담당의사의 소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암스트롱은 고환 한 쪽을 떼어 내고 뇌조직의 일부까지 도려내는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받은 후에 1998년 2월 사이클 계로 당당히 복귀합니다.

   죽음의 레이스를 넘어서서 생존확률 3%의 가능성과 희망을 일구어낸 기적의 스토리, 랜스 암스트롱의 위기돌파의 리더십에 대해 살펴봅시다.

 

   본론1. Never Give Up!   

   "만일 나에게 프랑스 투어와 암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승리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암을 택할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프랑스 투어 우승자라는 말보다는 암 정복자라는 말을 더 듣고 싶다. 그만큼 암은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생의 스승이다."라고 랜스 암스트롱은 밝힌 바 있습니다.

   프랑스 사이클 투어를 무려 7차례나 우승한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 유럽에서 인기 높은 사이클에서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했고 암 투병을 거치고도 다시 세계 최고봉에 우뚝 선 인간승리의 주인공. 그는 세계랭킹 1위를 달리던 1996년, 고환암 진단을 받았고 암세포는 가슴과 뇌에까지 침투하여 생존확률은 기껏해야 3%였습니다. 하지만, 사망신고와도 같은 진단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쪽 고환을 잘라내고 뇌를 절단하는 등의 대수술을 거치고 16개월의 항암치료와 투병의 세월을 이겨낸 1999년, USA 사이클링이 '금세기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로 꼽은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그리고 2005년까지 내리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며 미국의 영웅이 된 것이죠.

   1996년 당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고통스런 항암치료뿐이었지만 암스트롱은 "이렇게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은 처음 본다"는 의사의 말처럼 새로 찾아 올 인생을 위해 끊임없이 페달을 밟았습니다.

   암스트롱은 "고통은 순간적이다. 결국 고통은 사라지고 다른 게 그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중도에 포기하면 고통은 영원히 지속된다"고 얘기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이야 말로 암 투병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진정한 자신감'이란 돈을 주고 살수도, 조작할 수도 없으며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암스트롱은 그의 자서전에서 "암을 이겨내고 죽음의 레이스에서 연승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방법을 묻는다면, 나는 노력하는 방법 밖에는 다른 수가 없다고 말하겠다. 온몸을 부숴버릴 듯한 노력말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1999년, 그가 고환암을 이기고 뚜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였을 때 전 세계의 사람들은 그의 우승을 기적이고 미스터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약물중독이라고 그의 우승을 폄하하는 세력도 있었지요. 하지만 암스트롱은 자신의 우승은 전혀 미스터리도 아니며, 기적의 약물 때문은 더더욱 아니라고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암스트롱의 우승은 다른 선수보다 치밀한 훈련과 테크닉의 힘과 암이라는 위기를 돌파한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 버금가는 희생과 노력의 대가일 뿐,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위기돌파 리더의 특징 중 하나는 닥친 위기를 회피하지 않고, 그 위기를 기회로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자세를 가진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말이 쉽지, 당장 내 앞에 닥친 어려움, 특히 그것이 말기 암이라면 극복하고 이겨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의미로 '위기를 돌파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위기돌파 리더는 절대 생존의 아주 극한 상황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성취를 향한 인내와 노력'입니다. 말기 암의 상황은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여러 가지 한계 상황들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 기업 내에서 생존하기 위한 끊임없는 경쟁, 급변하는 변화와 성장 등 말입니다. 그 때 당신은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습니까? 변화하기 위해, 성장을 위한 자기계발과 도전을 위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당신은 진정 100% 노력하고 있습니까?  

   위기돌파의 됨됨이를 논할 때 요구되는 자질의 첫 째는 바로 인내입니다. 카리스마와 용기를 지녔다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든 평상심을 잃지 않고 절제심과 냉철한 판단으로 '포기하지 않고' 생존과 인내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랜스 암스트롱은 암을 극복하고 세계대회를 연속 제패하게 된 것에 대해 "투병을 통해 당황스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럼으로써 불안함에서 벗어나 끈기 있고 노력하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고 일이 꼬여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더 어렵고 나빠지지 않도록 낙천성을 발휘하고 포기하지 않는 위기돌파 리더. 진정한 위기돌파 리더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본론2. 1%의 희망만 있으면 달린다.

   불우하고 폭력적인 유년기를 보내고 독선적인 엘리트 선수로 성장한 랜스 암스트롱에게

암 선고는 '신의 장난'처럼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암 선고를 받은 후  그는 살 수만 있다면 사이클을 못 타도 좋고 폐품 수집이라도 하겠다며, 제발 살려만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암이 바꿔 놓은 것은 그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었으니, 천하의 게으름뱅이 엘리트가 암을 공부하고, 부끄러움과 겸손을 배우고 사랑과 희망을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가 진정한 스타가 된 것은 암을 극복한 후, 완전히 변화(transformation)되었으며, 자신만이 죽음을 넘어선 데 만족하지 않고, '랜스 암스트롱 재단'을 설립하여 암 환자를 돕는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그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재단에서는 '강하게 살자(Live Strong)'라는 글자가 새겨진 노란 밴드를 1달러에 판매하며 절망에 빠진 환자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물론 전 세계 정계 및 연예계의 많은 인사들이 이 밴드를 부착하며 그와 함께 뜻을 나누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 'Live Strong' 밴드는 전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암 환자들의 지원금으로 보태지고, 동시에 삶의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랜스 암스트롱은 "단 1%의 희망만 있어도 달린다"라고 말하면서 희망과 불굴의 의지를 전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절반의 가능성만 있어도 할까 말까 망설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 1%의 가능성과 희망만 있어도 주저 없이 도전하고 달렸고, 그것이 사경을 헤매던 고환암 환자를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투르 드 프랑스 7연패의 주인공으로 만든 진정한 원동력입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상을 돌파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더불어 그 상황에서의 최선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보다 나은 상황으로 이끌기 위한 긍정적 마인드를 지녀야 합니다.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적인 것들의 기초로 삼고 '부정'을 '긍정'으로 변환시킨 마음의 연금술 덕분에 랜스 암스트롱은 지금 우리 앞에 이 시대의 진짜 영웅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만 행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행복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지 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긍정과 부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긍정적 마인드의 소유자는 어떤 일을 대하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니 일이 더욱 잘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즐겁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반면, 부정적 마인드의 소유자는 똑같은 일도 부정적인 마음으로 하니 일이 잘 안 풀리게 되고, 자신감이 없으니 짜증스럽게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사람들을 지켜보는 타인들의 생각까지도 지배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은 일을 즐겨하는 모습을 보고 즐겁고 힘을 느끼게 되는 반면 부정적인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은 짜증내면서 투덜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부정적으로 변하여 힘이 빠지게 되겠지요.

   위기 돌파의 리더는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리더가 가지고 있는 긍정은 바로 비전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며, 도전하는데 실천의 힘이 되며, 따르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가장 중요한 리더의 요소이기 때문이지요. 고환도 모자라 폐와 뇌의 일부까지 도려낸 랜스 암스트롱, 죽음의 문턱에서도 1%의 희망으로 새로운 삶의 일구어 낸 그의 긍정과 희망의 리더십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긍정의 파워'를 느끼게 해 줍니다.

 

   결론. 삶의 레이스를 보는 우리의 자세

   긍정과 부정은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긍정적 마인드'를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우리는 적어도 생존율 3%의 병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지 않습니까? 매사 긍정적으로 나를 대하고, 타인을 대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성공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삶의 레이스에서 항시 'Live Strong'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고 실패가 닥치더라도 포기하지는 않는 '칠전팔기'의 마인드를 가진다면 우리 역시 제2, 제3의 랜스 암스트롱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특히 21세기의 기업인은 살아남기 힘겹습니다. 이태백, 사오정과 오륙도, 듣기만 해도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하지만 고환, 폐, 간, 뇌의 일부를 절제한 사람보다 우리가 더 힘들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3500km를 7월의 땡볕에서 3주 동안 쉼 없이 달리는 사람보다 우리가 더 힘들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긍정적 마인드로, 두 주먹 불끈쥐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내일의 암스트롱'이 되도록 노력 합시다!

 

 

 

Reference

 

정진홍, 완벽에의 충동

신완선, 파이팅 파브

 

랜스 암스트롱,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랜스 암스트롱, 1%의 희망

브래드 컨스, 랜스는 어떻게 했을까

앤드류 매튜스, 지금 행복하라

 

랜스 암스트롱 공식 홈페이지 http://www.lancearmstrong.com/

http://blog.naver.com/hongworld?Redirect=Log&logNo=60044433208

http://blog.naver.com/chaeon365?Redirect=Log&logNo=41776504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위해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이 글은 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인 정예지양이 현대경제연구소에 발표한 글입니다.

**. 모든 저작권은 현대경제연구소및 정예지양에게 있습니다.

***. 무단 전제를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론. 여인 천하에서 성공한 발칙한 털보

   오늘 스타리더십의 주인공은 1951년 전남 해남에서 7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15세 되던 1965년, 중학교 입시에 낙방한 채 무작정 서울로 향하는 야간열차 안에서 달걀을 까먹으며 목이 메었던 소년이었습니다. 달걀이 퍽퍽해서 목이 메기도 했겠지만 보다 큰 이유는 가난한 집안 살림과 중학교 낙방에 대한 한탄 등 서울로 향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처량했기 때문이지요. 부모님 몰래 달걀을 팔아서 한푼 두푼 모은 단돈 500원으로 상경한 그 소년이 바로 오늘날 한국 최고의 헤어 디자이너로 성공한 박준(본명 박남식)입니다. 

   남자 미용사가 거의 없던 70년대, 굴욕과 수모, 남자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오직 실력으로 최고의 미용사가 된 박준. 전국 최대 규모의 프랜차이즈 박준 뷰티랩을 일구고 미용 제국의 일인자로 군림하기까지의 그의 성공비결과 리더십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본론1.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슈퍼 리더.

   22세 되던 해, 그는 당대 최고였던 'YMCA미용실'에 취직을 합니다. 상경한 후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과 아이스크림 장사, 유흥업소 종업원 등을 전전하는 생활을 했기에 아무런 경력도, 자격증도 없던 박준이 할 수 있는 것은 잡일과 손님들의 샴푸를 해주는 일 뿐이었으나, 그것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남자 미용사가 없던 시절이기에 그를 고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이지요. 남자 '시다'라는 이유로 거부하던 손님들의 반응, 불쌍하게까지 여기던 손님들의 시선, 심지어 그를 호스트 바의 종업원처럼 대하는 손님들의 행동.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실력으로 최고의 미용사가 되는 것뿐이라고 다짐합니다. 손님들에게 모욕을 당한 날일수록 가위를 붙잡고 있는 시간은 길어졌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열 손가락 모두 물집이 생길 정도로 가위를 잡고 또 잡았습니다. 밤에는 미용학원을 다니고, 낮에는 미용실의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 날마다 손이 부르트도록 가위질 연습에 매달립니다. 또한 큰 가방 안에는 항시 가발을 씌운 마네킹과 미용기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과 장소만 허락하면 어디서나 미용 연습을 해댔고 미용 기술을 익히기 위해 친구들과 해남의 6명의 형제들을 늘 자신의 모델로 활용하며 잠자는 시간을 빼곤 미용에 젖어 지내기를 1년. 그렇게 밤낮으로 연습한 결과, 남들은 최소 3-4년 걸린다는 보조역할을 1년 만에 끝내며 미용사 자격증을 땄고, 1980년 국제 미용기술대회에서는 퍼머넌트 부문 3위로 입상하기까지 했습니다. 드디어 '헤어디자이너 박준'으로서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 어떠한 남성도 가지 않았던 길이기에 하루도 평탄치 않은 인고와 끊임없는 노력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박준의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1세는 "승리는 노력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승리는 가장 끈기있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간다. 어떤 고난의 한 가운데 있더라도 '노력'으로 정복해야 한다. 그것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굳이 나폴레옹의 명언이 아니더라도 성실하게 노력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만큼 타인의 주의를 끄는 것은 없습니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오랫동안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성공의 기본입니다.

   슈퍼 리더란 지식과 정보를 주도하며 많은 사람들을 리드하는 리더를 뜻합니다. 그러나,  리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감이나 카리스마에만 의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는 이가 진정한 슈퍼 리더입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의 슈퍼 리더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주체여서는 안 됩니다. 좋은 일을 더 많이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인과응보'의 법칙대로 더 많이 투입할수록 더 많은 것을 거둘 수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슈퍼 리더의 가치 있는 목표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계기를 만들어주고 영감을 줍니다.

     여전히 변화무쌍한 미용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읽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한다는 박준. 그를 통해 노력한 자만이 열매를 거둔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슈퍼 리더를 볼 수 있습니다.

 





   본론2. 차별성을 갖는 변화의 리더

   부엌이나 미용실 등에 남자는 얼씬도 하지 않는 시절, 박준은 용감하게 남자 미용사의 꿈을 갖고 미용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런 얘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남학생들만 있는 곳에 여학생 혼자 지나갈 수는 있어도, 여학생들만 있는 곳에 남학생 혼자 지나갈 수는 없다'는 얘기 말입니다. 겉으로는 강한 척, 있는 척 하지만 남자들이 그만큼 내면으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얘기겠지요.

   박준이 미용일을 시작한 곳은 'YMCA미용실'이라고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도 당시 국내 최고의 'YMCA 미용실'을 보게 됩니다. 스물두 살 되던 해, 다방에 모여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과 신세한탄을 하던 그는 화장실을 찾다가 활짝 열린 문 사이로 'YMCA 미용실'의 풍경을 보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순간, 그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하지 않는 일, 남들은 하지 않는 일, 바로 이것을 하면 성공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 아니, 확신을 가졌습니다.

   1년 후, YMCA미용실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서서히 이름을 알려갈 즈음, 명동의 유명한 미용실에서 그에게 스카웃 제의를 해옵니다. 자신을 키워준 YMCA미용실을 떠나는 것은 곧 배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행의 흐름을 주도하는 명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누르지 못하였고, 결국 그는 스카웃 제의를 수락합니다.

   그러나 명동에서는 아무도 그를 찾아주지 않았는데 이유인즉슨, 헤어 디자이너의 명성과 실력은 늘 찾는 단골손님에 의해서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요즘이야 미용사가 명함을 돌리는 일이 별일 아니지만 그가 처음 미용실에서 일할 때만 해도 없던 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명함을 만들었습니다. 세련된 헤어 디자이너로서의 이미지를 위해 본명 박남식을 박준으로 바꾼 것도 이 때라고 하네요. 헤어 디자이너로서 명함을 돌리고 이름까지 개명한 사람은 그가 유일무이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손님을 만들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길거리에 나가 명함돌리기를 하는 적극성을 발휘하고 자신을 알리는데 주저함이 없는, 차별화된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그만의 방식으로 도전하여 성공한 일화는 또 있습니다. 82년 명동에 자신의 매장을 오픈한 박준은 그가 미용업계에 발을 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남들이 안하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고,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알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새로운 소식을 접하기에 총력을 기울이던 중, 우연히 해외 토픽에서 모델을 거꾸로 매달아 머리칼을 자르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박준은 이 뉴스를 보자마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를 해 보리라'는 다짐을 하였고, 결국 <업사이드 다운 컷트>라는 이름으로 성공시키면서 세간의 관심을 얻고, 명성도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 성공에 힘입어 그는 계속적으로 타인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일들에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업사이드 다운 컷트의 성공 이후, 그는 1983년에 남성전용 미용실을 오픈합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것이 통념이었습니다. 그런데 퇴폐 이발소가 늘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고 그 보도를 접하던 와중, 그는 남성전용 미용실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남성전용 미용실은 다시 한 번 성공을 거두었고 미용실의 판도를 뒤집었습니다. 남성도 외모를 가꾼다는 사고 전환으로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이죠.

   21세기는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흐름을 놓치면 낙오하고 뒤처지게 되면서 '변화'는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변화가 화두가 된 시대에 자신의 삶을 꾸준히 새로운 것으로,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리더가 바로 변화 리더입니다. 현재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주의하며 그 흐름을 분석하여 미래를 읽어나가는 안목을 가진, 시대를 앞서는 리더 말입니다.

   남성전용 미용실 성공 이후에도 박준은 누구보다 앞서는 아이디어로 '박준 선풍'을 주도하였고, 그의 '변화 리더'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유행의 흐름이 강남으로 흐르는 것을 간파하여 청담동으로 자리를 옮겨 컴퓨터 시뮬레이터, 어린이 전용 미용실 등의 아이디어를 도입하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미래를 읽는 아이디어로 남보다 한 발 앞섰던 그는 이제는 어엿한 국내 최대 규모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일군 사업가가 되었고 미용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초등학교 학벌로 강단에 서는 대학 강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시작한 일은 김이 빠져서 하기가 싫었다. 일단 떠오른 생각이 괜찮겠다는 판단이 서면 바로 실천에 옮긴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다." 라고 박준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항상 변화하려고 노력하며,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다면 실행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지고 변화하고자 하는 리더.박준은 남자 헤어 디자이너라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맨 앞에 서서 걸은 진정한 변화 리더입니다.

   결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도전하라.

   박준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대로 남이 하지 않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헤어 디자이너 박준의 성공을 향한 발걸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털보 헤어디자이너 박준, 그가 단순한 남자 미용사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리더로 성장하게 된 것은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변화에의 의지 때문입니다.

   박준은 이제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저학력은 오히려 자랑거리이자, 그를 보다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과거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함으로써 박준을 '현재의 박준'으로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지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슈퍼 리더 박준의 모습을 통해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man of action(실천가)의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 입니다. 

 

 

 

 

 

 

Reference

 

최정화, 엔젤 아우라

김국현, 20대 부자 만들기

신완선, 파이팅 파브

전미옥, 30대, 반드시 승부를 걸어라(경제수명 2050시대)

나카지마 다카시, 성공을 꿈꾸는 20대를 위한 보물지도

 

http://blog.naver.com/phsoon21?Redirect=Log&logNo=80033771353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12&eid=i7z2qk1UfLzyzvGS1klbhF+mDqg4SBYo&qb=udrB2A==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위해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이 글은 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인 정예지양이 현대경제연구소에 발표한 글입니다.

**. 모든 저작권은 현대경제연구소및 정예지양에게 있습니다.

***. 무단 전제를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오프라 윈프리, 그녀의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

     

   서론. 오프라 윈프리, 인생역전 프로젝트

   오프라 윈프리. 그녀는 흑인입니다. 그녀는 사생아이고 미혼모였습니다. 가난했고 뚱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아메리칸 드림을 성공시킨 '가장 미국적인 인물'의 대표 주자입니다.

   미국에서 오프라 윈프리는 힐러리 클린턴 등과 함께 항상 존경받는 여성으로 뽑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녀가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며, 그녀의 영향력은 굳이 미국 내에만 국한되는 바는 아닐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을 딴 '오프라 윈프리 쇼'는 2002년까지 30회나 '에미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마흔 네 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그녀는 에미상 수상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소위 잘 나가는 오프라 윈프리의 과거는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어두움과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오프라는 미시시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집은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허나 그녀를 괴롭힌 것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었지요. 성폭력과 사생아의 출산, 마약과 스트레스로 인한 비만. 그녀의 과거사는 듣기에도 거북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오프라 윈프리는 어떻게 이겨내고 지금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요? 고난과 콤플렉스를 이겨낸 그녀의 변혁적 리더십에 대해 알아봅시다.

 

   본론 1. 오프라제이션, '솔직함'을 통한 변혁.

   오프라 윈프리 그녀는 9살 때부터 주변 사람들, 급기야 엄마의 남자 친구와 사촌들로부터 성폭력에 시달렸으며 14살의 어린 나이에 조산아를 낳았습니다. 물론 이 남자아이는 살아남지 못했지요. 또한 그녀는 마약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불행한 애정관계와 실연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프라는 이러한 사실들을 토크쇼를 통해 진솔하게 털어놓았는데 현재,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런 그녀의 '진솔함과 솔직함(authenticity and sincerity)'이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 동인(driver)이자 시청자들을 더 가깝게 끌어당기는 절대적인 힘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프라의 솔직함은 이제 새로운 뜻의 단어로 '오프라화(오프라제이션, Oprahzation)'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이고, 몇 년 전 <내셔널 리뷰>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오프라화라는 것은 단지 일게 당파의 신념이나 특정 양식을 갖춘 목소리와 같이 무의미하게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치료의 일환으로 '대중들 앞에서 하는 고백'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조차도 '오프라화'의 모든 의미를 전달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오프라화'는 국가 전체, 그리고 전 세계를 전면적으로 변화, 개조(transformation)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일상적인 용어가 된 것이다."

   가난 이상의 참혹함으로 불행했던 자신의 과거를 아주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녀의 '진정한 고백'은 그야말로 대단한 반향을 몰고 왔습니다. 그녀가 먼저 거추장스러운 삶의 껍데기를 벗어던졌습니다. 남들은 다 숨기려 하는 어린 시절의 악몽을 대중 앞에서 '눈물로 고백'하였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과거를 100% 보여준 그녀였기에, 그 어떤 출연자도 그녀 앞에서는 솔직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의 절망적인 인생경험에 대한 고백은 그녀의 인생을 비롯하여 많은 시청자들의 행동과 생활을 완전히 바꾸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오프라 윈프리는 가난과 불행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방향으로 그녀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녀는 불행한 과거를 천하에 고백함으로써 변혁의 밑거름으로 삶는, 변혁적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와 더불어 오프라 윈프리라는 인물 자체가 '희망'과 '변혁'의 상징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변혁적 리더십의 면모는 시청자들이 단지 그녀의 쇼를 '시청'하는 것을 넘어서서 시청자들의 이상과 가치에 호소하였고, 시청자들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도록 촉구하기에 이릅니다. 그녀의 솔직담백한 고백은 자기 스스로를 과거에서 건져내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1억 명에 가까운 시청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꿈과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심어주어 모든 이의 삶이 '드라마틱한 삶', 보다 멋진 삶으로의 변혁이 가능함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자신의 치부를 먼저 드러내는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성 '리더'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를 갖게 되었으며, 오프라는 모든 시청자들에게 "'나 같은 사람'도 성공하였습니다. 당신들은 보다 나은 수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라고 얘기함으로써 추종자(시청자)들의 기대수준을 확장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변혁과 변화를 얘기하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주저하고 있을 때, 변혁적 리더의 간절한 바람과 희망, 진솔함을 통한 변혁적 행동은 다른 사람들과 조직 안에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본론2. 타인의 꿈에 대한 '경청'과 '배려'

   오프라 윈프리는 영향력 면에서는 물론이요, 미국에서 가장 말 잘하는 사람으로도 손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오프라 윈프리는 '말을 잘 하기보다는 타인의 말을 잘 듣는 태도가 나의 성공비결이다'라고 밝힙니다. 실제로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게스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경청하고, 공감하며, 그 이야기에 박자를 맞추고 살을 붙임으로써 점점 진솔하고 속 깊은 이야기들이 터져나오게끔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변이 좋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입에 발린 미사여구를 잘 한다거나 아부성이 짙은 발언을 잘 한다는 뜻이 아니며,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진정성에 대해 거론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말에 '진정성'이 얼마나 담겨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하는 말에 담긴 진정성의 정도는 상대의 마음을 잘 읽는 것에서 시작되고,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에서 울리는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함을, 즉 경청해야 함을 뜻합니다.

   이러한 경청과 배려는 변혁적 리더십의 주요 구성 요소 중 하나입니다. 구성원(시청자)들의 개인적인 문제와 고민에도 관심을 가짐으로서 구성원은 리더가 개개인을 배려하고 있으며 자신이 관심을 받고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보 사회, 속도전쟁의 사회, 자기 PR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나를 더 멋지게 포장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말을 '뱉어내는 것'에만 급한 나머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에는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프라는 오프라 자신의 진심어린 고백을 뛰어넘어, 타인의 마음 속 깊은 얘기와 고백을 이끌어내는 것은 '경청'이라고 주장합니다. 단순히 듣는 '척'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일과 문제, 소망과 꿈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임으로써 호감도를 높일 수 있고 더 나아가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가 몇 년 동안 계속되면서 오프라의 진솔함과 게스트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은 시청자들을 감동시켰습니다.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뚱뚱한 흑인 여성이 진행하는 토크쇼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그녀의 쇼는 사회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다른 쇼들의 시청률을 월등히 앞질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오프라 윈프리가 사회자인 자신과 게스트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음은 물론, 눈물과 포옹으로 시청자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경청하는 변혁적 리더의 면모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웅변은 예술이다. 그러나 침묵도 예술이다'라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침묵과 경청이 잊혀지는 '예술'인 이 시대에 오프라 윈프리, 그녀는 달변과 경청의 두 가지 모습을 모두 지닌 진정한 변혁적 리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변혁적 리더십

   변혁적 리더는 역경과 시련의 상황에서도 의지와 노력, 그리고 실력을 기반으로 역경을 '기회와 변화'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변화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극한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이루어낸 오프라 윈프리. 그녀는 상반되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으며, 그녀의 사회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 의견이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가 여성 리더로서 '변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는 모두들 동의합니다. 그녀가 자신의 약점인 피부색과 가난함을 떨치고 일어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가장 눈에 띄는 '변혁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하는 이 시대의 여주인공이라는 점에도 의견이 일치합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저는 '감사합니다. 나는 정말로 축복 받았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스스로의 축복과 변화를 창조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기회가 다가올 때 그것을 잡기위해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날의 오프라가 되기까지 그녀는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고 수많은 난관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변혁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문젯거리로 점철된 힘겨운 삶을 이겨낸 치유와 변화의지의 승리.  그렇기에 그녀의 성공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Reference

 

이상철(위드스탭스 대표이사) 칼럼 '마음을 얻는 지혜, 성공의 지름길'

Janet Lowe(2002), 「신화가 된 여자, 오프라 윈프리」, 청년정신, 신리나 역

Anne Saidman(1990), Oprah Winfrey: media success story, Lerner Publications Co.

 

오프라 윈프리 공식 홈페이지, www.oprah.com

오프라 윈프리 프로필, www.empas.com/people/info/48/55/4855

지구촌 리더 여성들, www.sabiz.co.kr/w_biz2001/leader_woman/leader_woman_7.htm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위해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이 글은 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인 정예지양이 현대경제연구소에 발표한 글입니다.

**. 모든 저작권은 현대경제연구소및 정예지양에게 있습니다.

***. 무단 전제를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론. 승복, 슈퍼 보이

   미국 전역을 통틀어 사지마비의 장애를 가진 의사는 단 두 명입니다. 이 두 명의 인간승리의 주인공 중 한 명은 쟁쟁한 미국인 의사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의대, 존스홉킨스의 재활의학과의 수석 레지던트를 거쳐, 현 존스홉킨스의 수석의로서 온 병원을 열심히 누비는 한국인입니다. 휠체어 바퀴를 굴리는 두 손에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있는 의사. 그는 Dr. Lee, 한국명 이승복입니다.

   그의 의사 유니폼 가운데에는 S.B.Lee M.D.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지요. S.B.는 그의 이름 승복의 약자이지만 모두들 그를 승복이 아닌, Super Boy(슈퍼보이)라 부릅니다. 사지마비를 극복한 재미교포 의사, 이승복. 말 그대로 사지가 마비되어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던 그가 주사를 놓고 청진기를 들고 병원을 누비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고난과 도전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을까요? 사람들의 부정적인 생각과 싸우기 위해, 그저 안주하려는 마음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얼마나 많은 다짐을 하고 자신과 싸웠을까요? 슈퍼 보이 이승복의 피그말리온 리더십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본론1. 마음을 먼저 움직이라

   이승복은 여덟 살이던 1973년, 뉴욕으로 가족과 함께 이민 간 1.5세대입니다. 약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아이들 공부 잘 시켜서 의사나 약사로 키우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년 승복은 우연한 기회에 1976년 케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를 통해 루마니아의 천재 체조 소녀 코마네치를 본 후 체조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영어 발음이 안 좋아, 이민자라서 등등의 이유로 외롭던 시절, 체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열심을 다해 체조를 시작하고 그 노력은 빛을 발해 이승복은 뉴욕 주 챔피언이 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는 뉴욕 주 챔피언으로 머물지 않고 올림픽에 나가는 꿈을, 그것도 태극기를 단 한국 팀의 대표로 나가기를 꿈꿉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사고는 한순간이었습니다. 기계 체조에 전념하던 1983년 7월. 전미 올림픽 상비군에 포함될 정도로 올림픽 체조 유망주로 주목받던 이승복은 공중 회전을 연습하던 중 턱을 땅에 박고 추락했습니다. 바로 이 추락 때 입은 척추 손상으로 그는 사지마비 선고를 받았고, 미시간대 UCLA, 스텐포드 등 유수의 미국 대학에서 스카우트를 받고 올림픽 꿈나무로 자라던 그의 미래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병실로 회진을 온 의사들은 몸 이곳저곳을 쿡쿡 찔러보고 '넌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 앞에서 했습니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로 자기네들끼리 의견 교환을 하는 거예요. 마치 내가 실험실의 동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그들과는 다른 의사가 꼭 되겠다고요."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컬럼비아대 의대와 다트머스대 의대, 하버드대 의대를 거쳐 최고 병원으로 꼽히는 존스홉킨스대 병원의 재활의학 수석전문의가 됐습니다. 긴 터널만 같았던 치열한 의대 공부와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마침내 꿈을 이룬 것이지요. '그들과는 다른 의사가 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 셈입니다.

   그는 고통이 삶의 한 부분이며 누구에게나 고통은 찾아온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인내심이 길러지고 인내심이 길러지면 인성이 갖춰진다는 믿음을 가졌고 그 스스로 그 믿음을 실현시켰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기대와 믿음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 즉 마음으로부터의 변화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 합니다.

   우리 행동의 많은 부분들이 피그말리온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됩니다. 다시 말해, 일단 기대가 형성된다면, 우리는 그 기대를 확증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는 강한 경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변화는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마음으로부터의 변화는 바로 행동과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누구나 인생에서 한두 번의 좌절을 겪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승복은 좌절이 곧 절망이 아님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기 안의 긍정성은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해 주는데, 이는 신체적 장애가 그에게 한계가 아니듯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미래의 한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승복은 "지금 저는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제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신뢰와 믿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면 저는 쉬지 않고 휠체어를 돌릴 것입니다. 앞으로도 인생의 금메달을 향한 제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믿으세요."라고 말합니다. 정말 간절히 바라는가요?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내>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는 피그말리온 리더의 모습, 이승복을 통해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본론2. 역경 지수를 높이라

   내 안의 긍정성을 높임으로서 우리는 동시에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정도, 즉 역경 극복 지수(AQ, Adversity Quotient)를 높일 수 있습니다. 역경 극복 지수란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여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주위 사람에 의해 힐난을 받고, 모두 다 실현할 수 없다고 할 때, 나만의 긍정성을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계획을 실천에 옮김으로서  내 앞에 닥친 역경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전형적인 피그말리온 리더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미국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대가인 폴 스톨츠(Paul G. Stoltz)는 "21세기는 지능지수나 감성지수보다 이제는 역경 극복 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현재와 같이 변화가 화두가 되고 모든 면에서 변화의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는 지능이나 감성의 두 가지 지수가 아무리 높다 해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지능과 감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 폴 스톨츠의 주장입니다.이승복은 'No pain, no gain'을 외치며 난관과 역경을 헤쳐나가고, 꿈을 향해 질주하는 열혈청년이며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자신과 같은 사지마비환자들을 위한 재활의학과 의사가 되기  로 마음먹은 시절, 공부의 가장 큰 방해 요소는 바로 <아픈 몸>이었습니다. 오래 앉아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는 '해내야 한다, 허리가 끊어지더라도! 몸이 부서지더라도!'라고 마음을 다그쳤습니다. 아픈 몸과 지금의 역경을 이겨내야만 보다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콜롬비아 대학과 다트머스 의대를 거쳐 하버드 의대 인턴 과정을 수석 졸업하고, 세계 최고 권위의 존스 홉킨스 병원 재활의학 수석 전문의가 된 것입니다. 어려움과 장애를 극복한 이승복에게 '장애, 즉 역경은 오히려 축복'이 되었습니다.

   역경을 이겨낸 지금, 이제 그는 다른 의사들보다 환자들의 마음을 더 빨리 열 수 있고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멀쩡한 의사들보다는 '아픈 의사'인 그를 보면서 '노력한다면 웃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걸 환자들에게도 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자기 자신만이 어려움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다른 환자들에게도 절망과 역경 속에서 희망을 전해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승복의 이력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게 해 줍니다. 자신의 한계를 하나하나 깨 나가며 역경의 넘어선 희망의 증거가 된 이승복. 이처럼 스스로 위기와 역경을 극복하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도전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피그말리온 리더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고금의 성공 리더들이 보여주는 궤적도 역경과 수많은 어려움과 반대를 이겨낸 뒤, 안정감과 희망을 주변에 제공해 준다는 공통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피그말리온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자신 스스로부터 '안 될 거야', '그건 안 되더라', '어려워' 등의 표현보다는 '한 번 해 보자'는 말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마인드 세팅을 통해 긍정의 힘을 배가시켜 결국은 자신의 뜻한 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안 된다'는 말은 잊어버리고,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을 벗어 던지면 보다 나아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결론. 꿈은 이루어진다  

   무슨 일이든 기대한 만큼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 효과. 저마다 가슴에 지닌 바람, 소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실제로 가시화된 체험들을 한 두 가지씩은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정한 목표가 있으면 반드시 우리의 마음, 에너지, 시간은 그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 결국 목표는 마침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나도 모르는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오지는 않았는지,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방치해 두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내 몸의 사지가 마비가 된다는 상상, 혹시 해 보셨나요?

   너무나 끔찍해서 상상조차 하기 싫은 절망의 끝에서 기적은 일어났고 이승복은 꿈을 이루었습니다. 내 안의 능력을 믿고, 이를 개발하여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 수퍼 보이, 수퍼 걸이 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Bravo!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위해 댓글을 남겨주세요. -0-;